국내 양봉 산업과 생태계가 꿀벌 대량 폐사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올해 초 전국적으로 벌통 50만 개 이상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죽거나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겨울부터 올봄 사이 도내에서만 13억7,000여만 마리의 꿀벌이 폐사하거나 실종됐다.
연천, 포천 등지에서 월동 중이던 벌통 27만210개 중 25.3%인 6만8,410개에서 피해가 발생했으며, 피해액은 171억 원에 달한다. 이로 인해 경기도 내 전체 양봉농가 3,039호 중 45%인 1,364호가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전국 피해 농가의 18.7%에 해당한다. 꿀벌 매매가격도 군당 25만 원에서 35만 원으로 급등했다.
꿀벌 감소의 다양한 원인
전문가들은 꿀벌 개체 감소의 원인으로 여러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봄철 개화 기간 단축, 가을 저온 현상으로 인한 벌 성장 저하, 12월 고온으로 인한 ‘월동폐사’ 등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한 ‘네오니코티노이드’ 같은 강력한 살충제의 영향, ‘낭충봉아부패병’ 등 바이러스 창궐, 식물 바이러스인 ‘담배둥근무늬바이러스(TRSV)’의 돌연변이와 꿀벌 감염 사례도 확인됐다. 현대식 집약농법이 기후변화로 이어져 곤충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꿀벌 감소가 가져올 심각한 영향
꿀벌은 생태계와 농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벌떼 한 무리(4만~6만 마리)는 하루에 꽃 3억 송이의 수분을 도와준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인간이 섭취하는 100대 농작물 중 70%가 꿀벌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다.
2015년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팀은 꽃가루 매개 곤충들이 사라지면 과일 생산량은 22.9%, 채소는 16.3%, 견과류는 22.9%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인간이 작물을 통해 섭취하는 비타민A, 비타민B, 엽산 등 무기질 공급도 감소할 우려가 있다.
이미 꿀벌 감소는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올해 6월 수박 생산량이 4% 감소하면서 가격이 급등했고, 5월에는 전년 대비 38% 상승했다. 농작물 수분을 위한 꿀벌 임대 가격도 20% 상승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
경기도는 올해 1회 추경예산안에 피해 복구비 120억 원을 긴급 편성해 양봉 농가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월동 피해를 입은 벌통 6만8,410개의 70%인 4만8,000개에 대해 피해액의 50%인 6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도는 기후변화에 따른 꿀벌 면역력 저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관 등과 함께 ‘월동벌 피해 민관 합동조사’를 실시했으며, 3월에는 시·군별 피해 전수조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5년경 꿀벌이 완전히 멸종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환경단체 ‘어스워치’는 꿀벌을 “대체 불가능한 생물 5종 중 첫 번째 종”으로 지정했다.